저자: 매일매일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기를 꿈꾸는 공부 생활자.
27년 동안 정독도서관과 남산도서관 등 서울시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도서관과 책에서 얻은 독서 지식으로 인생의 경험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책과 영화를 대할 때는 대범하지만,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할 때는 소심해지는 번역가이기도 하다.
느낀점: 이 책에 대한 여느 후기를 봤던 적이 있는데, 제목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인데 실제로 글쓴이는 젊은 사람 같다는 얘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 후기가 떠올랐다. 아무리 젊은 할머니 (5-60대)를 생각해봐도, 그보다는 좀 더 젊은 느낌의 문체였다. 중간중간 공감가는 문구들도 있었으나, 국어국문학과 출신의 저자의 이야기가 뼛속 깊이 공감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번역가의 삶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고, 사서로의 삶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밑줄긋기:
나는 배우는 게 취미라고 사방에 자랑하고 다닌다. 그러나 '열심히'라는 단어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뭔가를 배우려고 시작은 하더라도 그 과정을 즐기면서 천천히 진도를 조금씩 빼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카페는 더없이 좋은 장소다. 집에서 번역 작업이나 공부를 하다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달을 때면 나태함을 자책하곤 하는데, 카페에서는 곧잘 집중이 잘된다. 잠시 창밖의 높다란 하늘을 바라보거나 사람 구경을 하면서 여유를 부려도 마음이 흡족하기만 하다.
p.7
공부하는 스타일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적당한 자극을 주고받으며 공부하는 재미를 나눌 친구들이 있어 공부를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p.9
현재의 삶에 갇혀 더는 생각이 자라지 않을 때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그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내겐 뭔가를 배우는 일이다.
p.10
정재승 박사의 <열두 발자국>에는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한 문제와 단순히 집중력만 필요한 문제를 풀게 하는 실험 이야기가 나온다. 집중력이 필요한 문제를 풀 때는 천장의 높이가 가장 낮은 2.4미터였을 때 성과가 제일 좋았고, 추상적인 두 개념을 이어야 하거나 어떤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는 천장의 높이가 가장 높은 3.3미터에서 최상의 성과가 나왔다고 한다.
천장의 높이가 높을수록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니. '그래서 내가 카페에서 일하기를 즐긴 거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지금과 같은 카페문화가 존재하기 이전의 대학 시절에도 나는 학교 앞 다방에서 리포트를 쓰거나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p.32
사람들마다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트인 공간이 주는 공공성을 즐긴다. 혼자 있음에도 외롭지 않고, 여럿이 함께 있지만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지만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는, 약간의 제약이 뒤따르는 그 장소성이 내 자세와 태도를 바로잡아줘서 더 좋다. 그렇게 절반쯤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공부하고 작업하는 것은 생산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싶으면 카페에 간다. 원고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발길이 저절로 카페로 향한다. 일하다가 갑자기 멀쩡하게 잘 정리된 그릇장의 그릇들이나 싱크대 서랍을 다시 정리하고 싶어질 때도 카페에 간다. 집은 완전히 사적인 공간이어서 너무나 편안한 나머지 딴짓을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꼭 필요한 집안일이 아닌데도 일을 만들어 딴짓을 하고 있다 싶으면 공간을 바꿔주는 게 낫다.
p.34
'책모임 만들기의 정석' 같은 건 모른다. 관심이 가서 구입해 책장에 모셔두고는 더 재미있는 신간이 나올 때마다 뒷전으로 밀리는 책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느낌이 오면, 하나씩 꺼내 함께 읽을 사람을 찾을 뿐이다. 가볍고 재미있는 책은 혼자서도 잘 읽지만 두께가 목침 같은 책, 무게는 가벼워도 내용이 버거운 책, 혼자 읽다가는 혼절해버릴 것만 같은 책들이 쌓이면 인생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다.
p.46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결과가 너무 불확실해 보이면 피로도가 높아진다. 중간중간 적절한 보상과 성취감을 얻을 기회가 있어야 더 오래 공부를 즐길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짧은 기간에 기초 단계를 마치고 성과를 내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과 맞다. 그래서 어학을 공부할 때는 자격시험(등급시험)을 보거나 방송대에 편입하는 것이다.
p.66
내 경우, 어떤 외국어를 배워도 입 밖으로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는 때가 많지만, 그 외국어로 쓰인 책을 읽는 일은 가능하다. 책 읽기를 밥 먹기와 같은 레벨로 생각하는 나로서는 한국어로 된 읽을거리가 없거나, 새로운 책을 구할 시간이 없을 때 상비약처럼 쟁여두는 것이 영어로 된 소설책이다. 수중에 읽을 책이 떨어지면 영어 소설을 읽고, 번역되지 않은 책을 빨리 읽고 싶을 때는 원서를 주문해서 읽는다. 그러다가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재미난 책을 발견해서 국내에 소개하고 싶어 직접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 밑지지 않는 거래'란 바로 이럴 때 사용하려고 아껴둔 말이다.
p.69
도서관 사서가 되면 도서관에 일부러 시간 내서 책을 반납하러 갈 필요가 없어서 좋다. 출근길에 책을 반납하고 퇴근길에 대출하면 되니, 이보다 더 나은 도서관 이용법이 어디에 또 있으랴. 사서가 되기 전에는 도서관에 보고 싶은 책을 빌리러 갈 때면 발걸음이 가벼운데, 반납할 때가 되면 왜 그리 할 일이 많고 시간은 없는지...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 분들은 아마 내 말에 깊이 공감하시리라.
더 좋은 건 엥겔계수보다 높은 나의 제2엥겔계수, 일명 책값계수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었다는 점이다(제2엥겔계수는 섭취 에너지 중에서 전분질식품을 취해서 얻는 에너지 비율을 계산한 전분식비율을 의미하지만, 나는 이를 책값계수라고 내맘대로 바꿔 부른다. 나의 일용할 적분은 '책'이니까). 읽을 책을 사서 쟁여 두는 버릇 때문에 용돈 적자 현상을 만성적으로 겪고 있던 나는, 취직과 더불어 도서관의 책을 빌려서 읽은 다음에 마음에 들면 책을 사는 버릇이 생겼다. <채링크로스 84번지>의 작가 헬레인 한프는 "읽어보지 않은 책은 절대 사지 않는다"라고 했다. 옷을 살 때 미리 입어보지 않고서 어떻게 모험을 할 수 있느냐며 책을 살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p.161
한강 작가는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했다. 책에 대한 허기를 느끼고 며칠 동안 정신없이 책을 몰아서 읽으면 어느 순간 충전했다, 강해졌다고 느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마음의 '결락缺落'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락의 사전적 의미는 '있어야 할 부분이 빠져서 떨어져 나감'이다. 어느 문학 강연에서 이 단어를 듣고 이제야 딱 들어맞는 나만의 단어를 찾은 느낌이었다. 살다 보면 분명 마음의 결락이 생긴다.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p.167
자격증 공부만 해도 그렇다. 직장에서 높은 인사고과 점수를 얻기 위해서라거나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취득해서 남들에게 처지지 않도록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라면 무엇을 해도 괜찮다. 하지만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할 때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보자. 자격증을 손에 쥐어도 취업이 되지 않는다면 또는 승진의 기회가 물 건너간다면, 당신이 그동안 한 공부의 과정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공부의 목적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둔다면 당신이 합격증에 바친 시간과 노력은 빛이 바래지 않을 수 있다. 공부하는 그 과정을 즐긴다면, 그 기억과 경험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공부와 친구가 되면 최소한 지루할 일은 없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말했다. 하지만 내가 욕망하는 바를 안다고 해서,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서두르거나 무리해서 달리고 싶지는 않다. 당신이 해낼수 있는 일이라면 분명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테니까. 순간의 작은 성취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라도 온전히 누려볼 것. 나는 그렇게 작은 일에도 큰 일에도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다.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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