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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김미리 (5도 2촌 생활 직장인 에세이)

 

 
작가소개
평일에는 서울 사는 직장인, 주말에는 시골 사는 자연생활자. 몇 년 전 쓰러져가는 시골 폐가를 덜컥 사버린 후,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살고 있다. 평일엔 서울에 발붙이고 바삐 살다, 금요일이 되면 시골집으로 퇴근해 천천히 산다. 장래희망은 매일 아침 마당을 쓰는 노인처럼 사소한 꾸준함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현재는 〈오늘의집〉에서 이커머스 MD로 일하며, 틈틈이 시골집의 사계절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 중이다.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에 봄에는 봄이, 여름에는 여름이 가장 좋다고 답하는 사람.
 
느낀점
나도 김미리 작가님처럼, 내 마음이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고 내가 나를 위로하고 힐링시켜줄 수 있는 방법을 즉시 실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의 작가님이 5일 동안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금요일 밤에 시골로 이동해 토,일 2일간의 주말을 시골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오늘의집' 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이직의 기회도 생기고, 퇴사 후 프리랜서로서 강연하고 책 집필하는 등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작가님의 생활이 멋져 보인다. 처음에 5도 2촌 생활을 시작했을때는 생각지도 못했을 멋진 세계가 펼쳐져 보여.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즉 실행 해보아야지.
 
 

 
'언젠가는 시골집에서 살아볼 거야' 에서 
'언젠가'를 빼버리기로 했다.

 

 
떠나고 싶었다. 복잡한 도시를, 치열한 일의 세계를, 경쟁하듯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들을.
어느 날 갑자기 시골 폐가를 사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덜컥 매매 계약을 하고 집을 고치기 시작했을 때, 남몰래 마음에 품은 단어는 '퇴사'였다.
이 집을 다 고치고 나면 무슨 수를 쓰든 회사를 그만둘 것이고, 서울을 떠날 것이며,
안 봐도 되는 이들을 안 보며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막상 공사가 끝나니 현실감이 돌아왔다. 내겐 월급이 유일한 수입원이었고, 시골에서 돈벌이할 만한 기술 같은 건 없었다. 게다가 시골집을 사고 고치느라 빌린 대출금도 상환해야 했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로 아예 떠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당분간 서울과 시골집을 오가며 살아보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골집에서 첫 계절을 맞았다. 봄이었다.
 
그 후로 다시 두 번의 봄이 지났다. 최초의 계획과 달리, 지금도 나는 회사에 다니고 서울에 산다. 대신 금요일 밤이면 서울에서 시골 집으로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시골집에서 몇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다. 그 계절 속 일들을 기록했더니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 책은 낡고 불편한 구석이 있지만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집, 나의 시골집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모든 것에서부터 멀어지고 싶었던 나를, 살피고 돌보아온 기록이기도 하다.
p.5
 
// 작가들은 이렇게 "나의" 이야기에 대한 책을 쓰는구나 //
 
 
09:30 sat
주말 아침에는 어렵지 않게 산책을 마음먹게 된다. 눈뜨면 출근하기 바쁜 평일 아침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다. 적당한 외출복을 찾아 입고 대문을 나선다. 마을을 벗어나 조금 걷다 보면 금방 숲길을 만난다. 바람 소리, 물소리, 새 울음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숲속을, 발소리를 낮추며 걷는다.
걷고 또 걸으며 고민이라고 말하기엔 자잘하지만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일들을 되짚어본다. 그대로 두어도 딱히 별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방치하면 가끔 따끔한 맛을 보게되는 손거스러미 같은 일이다. 주말 아침의 산책길에서 알게 된 사실은, 보통 그런 일들은 내 마음을 다치게 한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거나 상황에 맞게 대처한다면서 정작 나를 방치해서 마음 아팠던 일. 그게 까슬하게 남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오롯한 시간, 고요한 숲속에서 쭈뼛쭈뼛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네 마음 나는 안다고. 지난 한주도 나로 사느라 고생 많았다고. 이번 주말도 재밌게 보내자고.
p.16
 
// 나로 사느라 힘들었던 한주, 고생 많았어. 나도 이렇게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
 
 
20:00 sat
꽉 채운 토요일, 지금부터는 자유시간이다. 난로 곁에 앉아 어제 남긴 와인을 마시며 소망이와 시간을 보낸다.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보고 싶었던 드라마도 정주행한다. 별이 얼마나 떴을까 궁금해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매번 선명하게 보이던 별들이 오늘따라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내일은 날이 흐릴 모양이다.
p.20
 
 
 
11:00 sun
시골지벵서의 시간은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다. 어제의 잔디 작업처럼 집의 어딘가를 바꾸거나 고치는 날, 텃밭에 작물을 심거나 수확하는 날이면 순식간에 하루가 끝나버린다. 오늘처럼 비가 오고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은 시간이 느리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이런 날은 무언가를 보고, 읽고, 기록한다. 이 집에서 보내는 이런 시간들이 나를 더 새롭고 단단하게 해주는 것 같다.
 
 
 
16:00 sun
일요일 오후에는 <수풀집 편지> 웍노를 쓴다. 구독자들에게 격주에 한 번, 나의 시골집, '수풀집' 의 이야기를 이메일로 보낸다. 일종의 시골살이 뉴스레터다. 텃밭, 시골 풍경, 마을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 마당에 놀러오는 고양이들 같은, 이 집의 모든 것들이 소재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을 슴슴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 읽히며 새로운 의미로 기억된다. 그 마음과 의미가 구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한 자 한 자 적는다.
p.26
 
 
22:30 sum
어디서인가 하루하루를 여행처럼 생각하면,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특별해진다는 구절을 읽은 적 있다. 5도 2촌 생활(일주일에 5일은 도시, 2일은 시골에서 사는 생활) 을 시작하고부터는 늘 여행하는 마음이다. 서울에서 보내는 닷새 동안은 주말 이틀이, 시골집에서 보내는 이틀 동안은 서울에서 보내는 닷새가 여행처럼 느껴진다. 집에서 집으로 떠나는 아주 익숙한 여행.
서울에 도착한 일요일 밤, 나는 이렇게 반갑게 서울과 마주한다.
p.26
 
 

 

1. 봄                                                                                                                                                                                                                                        

 
온라인 스토어는 문을 닫지 않는다. 연중무휴, 24시간 오픈이다. 머리를 감다 말고 물을 뚝뚝 흘리며 컴퓨터 앞으로 뛰어가거나, 늦은 밤 음식점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힘든 날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일로 얻는 크고 작은 성취와 인정들이, 나를 일의 세계로 떠밀어주었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잘 굴러갔다. 급하게 추가되거나 변경되는 일이 있어도 마감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몸이 아파도 병원 일정을 미루거나, 옷장 속이 엉망이 되거나, 가까운 이들의 대소사를 잊는 일이 흔해졌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느새 10년 차 MD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속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이 우연히 날카로운 무언가에 닿아 툭 끊어져버렸다. 출근길 지하철역 계단이었다. 마음만큼 걸음도 바빴던 내 앞에,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느리게 걷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등에 코를 박은것마냥 바짝 따라 걷고 있었다. 몇 계단 지났을까. 그 사람은 여전히 느렸고 순간 나는, 그를 확 밀쳐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앞선 이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빨리빨리 가라고. 안 바빠? 당신만 안 바빠. 난 바쁘니까 비키라고! 길 막지 마라고!'
 
대체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음이 고장난 것 같았다. 더이상 괜찮지 않았따.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분노조절장애, 정신과 상담, 심리 상담 같은 단어를 검색해보았다. 한 달 살기, 휴직, 퇴사 같은 단어들도. 그 검색의 마지막이 '시골집 매매'였다.
p.37
 
 
시골살이를 시작하기 전의 주말은 그저 밀린 잠을 해결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주말 내내 쉬었는데도 월요일 아침엔 해결되지 않은 피로감에 괴로웠다. 물론 지금도 월요병에 시달리고 여전히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주말이 평일의 도피처가 아니라 오롯한 쉼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도 달라졌다. 이전의 나는 나와 조금 서먹했다. 서른 중반이 지나도록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보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집 고치기가 그 계기가 되었다. 쓰러져가는 폐가가 내 손을 거쳐, 몰랐던 나의 취향과 선호를 담은 공간이 되어가는 과정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공사는 끝났지만, 집을 돌보고 그 안에서 사는 나를 돌보며, 나는 나와 점점 더 좋은 사이가 될 것 같다.
p.41
 
 
 
도피든 무엇이든 나는 주말마다 시골집에 갔다. 그리고 주말만큼은 마감 시간과 할일 목록이 없는 시간을 누렸다. 주말마다 의무적으로 잡던 약속이나 모임도 과감히 패스했다. 그저 방전 상태인 나를 충전하려고 애썼다.
그러고 보면 텃밭의 작물들에게 필요했던 모든 것들이 내게도 필요했다. 때로는 시간이 필요했고, 때로는 온갖 관계에서 멀어진 오롯한 휴식이 필요했다. 과감한 가지치기처럼 덜어내기가 필요했던 수간도 있었다.
p.48
 
 
 

 
2. 여름                                                                                                                                                                                                                                    

 

여름 텃밭은 뭐랄까, 무한 리필 채소 가게 같달까


 



 
양파 수확
작년 가을에 심은 양파. 긴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봄을 지나 겹겹이 단단한 양파가 되었다. 간밤에 내린 비에 줄기가 모두 꺾이고 쓰러졌길래 놀란 초보 농부는 얼른 수확했다. 그런데 옆집 어르신이 오셔서 보시고는, "거 벌써 뽑았어? 꼬다리가 빼싹 마르면 그때 뽑는 거신디. 앞으로는 물어보고 햐" 하신다. 
p.104
 
// 문득 부모님이 시골에서 양파 수확해서 보내주신 때를 기억해 보았다. 그래, 그때가 늦봄에서 여름이 시작되는 무렵이었지 //
 
 
감자 수확
봄에 심은 감자는 6월 하순에 수확한다. 보통 1년 중 날이 가장 길다는 절기인 '하지' 전후로 수확해서 '하지감자'라고 부른다. 풍작을 위해서는 적당한 깊이와 간격이 가장 중요한데, 가장 어려운 것도 그것이다. '적당히'가 정확히 얼마큼인지 아직 나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농사에서도 삶에서도 아직 '적당히'가 어렵지만, 올해 감자 농사는 운 좋게도 대성공이다. 흙 속에서 커다란 감자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나는 1수확 1탄서을 연발했다. 초보 농부도 차별하지 않는 너그러운 텃밭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p.108
 
// 감자도 여름이 시작되던 때에 시장에 많이 보였던 거 같네 //
 
 
 
- 늦은 밤 수풀집을 향해 달려가는데, 앞집 할머니가 조심해서 큰길로 오라고 전화하셨을 때
- 작은 씨앗이었던 무가 땅을 박차고 나와 하얗고 널찍한 이마를 내밀 때.
- 추운 겨울, 난롯가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실 때.
-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을 마주할 때.
- 금요일 밤, 설레며 수풀집으로 향할 때.
- 일요일 밤, 24시간 편의점과 배달 음식이 있는 서울집으로 다시 떠나올 때.
 
이럴 때마다 나는 행복을 감지한다. 
이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포착해서 모아두기로 했다. 행복은 열심히 레이더를 세우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모호하게 다가와서, 잠깐 머물다 가버리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행복하다 느끼는 '인생'이 되는게 아닐까. 그리하여 종종 꺼내어보기로 한다. 내가 캡처한 행복의 순간들을.
p.111
 
// 나도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연휴,휴가,주말을 이용해 고향에 방문해 부모님의 넉넉한 사랑과 정을 듬뿍 느끼고 서울에 올라올때
친척의 따뜻한 정을 느낄때
친구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받았을 때
맛있는 음식과 와인, 좋은 음악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때
스트레스 잔뜩 받은 한주의 마무리를, 혹은 휴가를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캠핑장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며 힐링할때
나도 이런 찰나의 '순간들을 모아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보아야 겠다. 종종 꺼내어봐야지. 내가 캡처한 행복의 순간들을  //
 
 

 
3. 가을                                                                                                                                                                                                                                    

 
어디서 읽었는지 혹은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요즘 사람들이 우울감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가 실체 없는 노동 때문이라는 말을 접한 적 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채집과 수렵을 통해서 만족감을 느꼈는데, 현대로 오면서 실체가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일상을 반복하기 때문이라나. 그래서일까. 작은 모종과 씨로 심었던 배추와 무가 크게 자라나 수확할 때, 장독 가득 김치가 되었을 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승진했을 때보다 기뻤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그보다 기쁘지는 않았는데 확실히 승진의 기쁨보다는 오래 지속되는 기쁨을 주었다. 김장김치를 다 먹을 때까지 매끼니 기뻤으니까 말이다.
p.160
 
// 생각해 본 적 없는 부분인데, 우리가 요즘 하는 일들은 정말 실체 없는 노동이 많았네 //
 
 
 
 
'돌아오는 계절에 내가 뭘 입고 뭘 먹을 것인지, 뭘 누리며 보낼 것인지 이렇게 정성스레 준비해본 적 있었던가?'
 
회사에서는 항상 다음 계절을 미리 준비하곤 했다. 분기로 나누고도 모자라 월간, 주간 촘촘하게 회사와 팀의 일들을 계획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주 부지런하고 철저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오면 한없이 게으른, 또 다른 내가 되었다. 퇴근하면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먹고 마시기 바빴고, 그런 내 옷장에는 정리되지 않은 지난 계절의 옷들이 늘 뒤섞여 있었다.
 
어떤 질문이든 그 앞에 '가장 좋아하는'을 붙이면 답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누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하고 모범 답안을 만들어둔 적도 있다. 금방 답하지 못하면 왠지 취향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는 질문에는 예전부터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따뜻한 계절인 봄을 가장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 질문 앞에서도 머뭇거리게 될 것 같다. 오늘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럼 뭐 여름이랑 겨울은 꿀리나. 지나간 여름과 겨울에도 가장 좋아하는 게절이라 부를 만한 순간들이 있어쏙,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때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에 감동하며 나는 또 '여름이 최고야', '겨울이 최고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게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가을이라고 답해야지, 하고 미리 생각해둔다. 왜냐하면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가을이니까. 언제고 지금 통과하는 계쩔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을비가 내린 후의 산책을 좋아하고, 가을 특유의 색깔과 냄새를 좋아한다. 매번 새로운 수확의 손맛도 좋아한다. 그리고 다가올 계절을 정성스레 준비하는 가을날 속의 나를 좋아한다.
 
가을이 최고야.
p.171
 
 

 
4. 겨울                                                                                                                                                                                                                                   

 
양파가 매운 이유
 
이제 봄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을까. 그런데 이웃집에서 이제 겨울작물을 심는 때라고 하신다. 재빨리 읍내에 가서 양파 모종을 몇 개 샀다. 마늘 종구는 이웃에서 조금 얻었다. 
 
양파 모종과 마늘 종구는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 심는다. 그러면 겨울 노지의 칼바람을 이겨내고 봄에 다시 자라난다. 눈이 내리고 땅이 꽁꽁 어는 한겨울을 맨몸으로 버텨내는 것이다. 
 
가끔 햇양파를 먹을 때 어쩜 이렇게 매우면서도 달큰할까 궁금했다. 아마 겨울의 매서운 추위 덕분일 것이다. 고유한 향과 깊은 맛은 긴긴 겨울을 작은 뿌리로 버티며 온몸으로 통과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최근에 외면하고 싶은 고민거리가 생겼다. 그런데 텃밭을 가만히 바라보니, 지금은 회피가 아니라 돌파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통과해야 단단한 나로 열매 맺는 계절을 기대할 수 있다.
 
양파에게도, 나에게도, 겨울나기가 필요하다.
p.184
 
// 양파가 매우면서도 달큰한 이유가 나도 궁금했는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실제로 이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은 어렵다. 사소한 점심 메뉴든 그 이상이든 말이다. 이것과 저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어설프게 중간 지점에 머무른다. "둘 다 괜찮아", "전 다 좋아요" 라는 말들을 앞세워서 말이다. 
 
이런 성향은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집안 사정 때문에 전학을 자주 다녀야 했다. 1학년 때만 전학을 예닐곱 번은 해서, 그 내력을 적느라 생활기록부에 종이를 덧대야 할 정도였다. 나는 매번 새로운 학교, 친구,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리고 적응이 될 때쯤 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를 반복했다. 그때 나는 생존전략으로 무색무취와 순응을 선택햇던 것 같다. 정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빨리 적응하려면 모든 면에서 무난한 게 좋다. 특별히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보다 중간 즈음에 머무르는 게 편리하다. 중간이 편한 초등학생은 자라서, 중간이 편한 어른이 되었다.
p.188
 
 
공사가 끝난 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취향이란 게 열렬히 좋아하거나 원하는 마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나처럼 51 대 49의 비중으로 무언갈 조금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에게 취향이란 내 마음이 아주 조금 더 이끌리는 것을 찾아가는 일이다. p.190

 
// 요즘 나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다른 것보다 아주 조금 더 이끌리는 것들. 와인, (와인에 곁들일) 요리와 안주. //
 
 
#표고버섯밥
 
요즘 빠져 있는 메뉴는 '표고버섯밥'이다. 밥솥에 쌀을 씻고 물을 넣어 취사를 누르기 전, 표고버섯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는다. 귀찮아서, 빨리 먹고 싶다는 이유로 쌀도 미리 불리지 않는다. '백미 쾌속' 을 누르고 밥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밥이 다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양념장을 휘리릭 만든다. 간장 두 숟가락, 설탕 반 숟가락, 다진 마늘 반 숟가락에 깨, 참기름, 고춧가루를 조금씩 넣고 파나 고추를 송송 썰어 넣는다. 고추가 없으면 빼고, 부추가 있으면 넣고, 대파가 없으면 쪽파를 넣고 그런 식이다. 밥솥이 증기 배출을 시작하면 이미 온 집 안에 표고버섯 향이 가득하다. 요즘 푹 빠져버린 메뉴. 
p.203
 



 
 
#감자수프
 

작은 감자 두 개를 얇게 썰어 물을 붓고 삶는다. 감자가 삶아질 동안 다른 냄비에 양파 3분의 1개와 버터를 넣고 살살 볶는다. 양파가 갈색으로 바뀔 때쯤 삶아둔 감자를 넣고 잘 섞는다. 원하는 농도만큼 우유를 넣고 (생크림을 넣으면 좋지만 수풀집에는 항상 없다.) 소금 간을 살짝 한다. 블렌더로 부드럽게 갈아낸 후 다시 한번 냄비에서 데우듯 끓여주면 완성이다. 혹시 파슬리 가루나 체다치즈가 있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쌀쌀한 아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메뉴다.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