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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맛있는 위로의 시간. 강효진

느낀점
  어쩌면 나와 우리 엄마의 이야기. 우리 엄마를 (우리 아빠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책.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서 많이 외로우실텐데 입 밖으로 쉬이 표현하지 않았던 우리 엄마의 (아빠의) 외로움의 표현을 책 속 작가의 엄마가 내뱉고 있는 건 아닐까. 작가는 그런 엄마의 표현들이 본인을 불안하게 만들고 걱정하게 만들지만, 의외로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던 (다른 하고 싶은 표현은 잘 하는) 우리 엄마도 알고 보면 속에 그런 마음이 가득하지만 우리가 걱정할까, 불안해할까 싶어 속을 내비치지 않았을까. 
  오늘은 집에 전화를 드려야겠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 고향에 방문해 엄마 아빠와의 시간도 보내고, 건강도 챙겨 드리게 병원도 같이 가 드려야지.
  어릴때 엄마가 싸준 도시락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는, 어릴적 엄마가 싸준 도시락에 대한 우리 자매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그 당시엔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우리도 엄마가 되어보면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될까? 이 책 작가가 엄마를 이해하듯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따라 만들어 보고 싶은 요리
ㆍ 냉장고 파먹기 잡채
ㆍ 한그릇 든든한 비빔밥
ㆍ 카푸치노
ㆍ 오이 달걀 샌드위치
ㆍ 당근전
ㆍ 꽈리고추찜
ㆍ 애호박전 (애호박, 당근, 양파)
ㆍ 묵은지 돼지 목살찜
ㆍ 또띠아 사과 피자
 
영감을 받은게 있다면
ㆍ 치아바타,바게트,캄파뉴,크로와상을 만들어 보아야 겠다 (홈베이킹)
ㆍ 엄마아빠와 맛있는 밥 먹기, 여행가기 (추억 만들기)
ㆍ 소목과 같은 책을 좋아하는 동네 친구와 둘이서, 혹은 저자가 SNS로 만난 랜선 언니들 같은 사람들과 독서 모임을 해보고 싶다
 
저자 소개
  강효진.
  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다. 시가 좋아서 오랫동안 시만 읽고 썼다. 지금은 '시'라는 확대경으로 세상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을 닮고 싶어서 다시 시를 읽고 쓴다. 카페, 서점, 관공서, 건설 회사, 결혼식 피아노 반주 같은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어린이 독서 수업과 중고등학생 국어 수업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오직 나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삶이 크게 달라졌다고 믿는다. 아침이면 숲길을 걷고, 점심엔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리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정성껏 깎은 연필로 빼곡히 적고 나면 특별한 하루가 남는다.
  날마다 조금 더 나다운 사람이 되어 나다운 글을 써나가고 싶다.
 
 
 


 
 

울다가 '희희' 웃은 아침│ 냉장고 파먹기 잡채
  냄비에 물부터 끓인다. 물이 팔팔 끓으면 불을 끄고 넉넉히 꺼낸 당면을 담가두고는 냄비 뚜껑을 닫은 채로 10분 정도 기다린다. 그 사이에 마늘종과 파프리카를 먹기 좋게 썬 뒤에 간장 양념을 조금씩 해가며 팬에 볶는다. 10분이 지나면 불린 당면을 건져서 볶아둔 채소들과 함께 양념을 조금 더 첨가하면서 볶아주면 끝. 나는 살짝 매콤한 것을 좋아해서 청양 고추도 쫑쫑 썰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참깨를 솔솔 뿌려주면 초간단 잡채 완성 
   양념할 때 빼먹은 후추를 찹찹 갈아 뿌려서 후루룩 후루룩. 다른 것 다 잊고 잡채를 실컷 먹었다. 아니 들이마셨다. 야들야들 부들부들한 면발이 후룩후룩 넘어가면 달콤한 파프리카와 아삭한 마늘종이 입 안을 상큼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내가 만들었는데도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내 손으로 만든 음식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 오는 날도 있을까. 엄마가 음식 만들기를 즐기지 않았던 것은 음식으로는 엄마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p.21-22
 
 
<울다가 먹어도 맛있는 냉장고 파먹기 잡채>
1.속상해서 눈물 나는 날 커다란 냄비에 물을 넉넉히 넣고 속이 풀리도록 팔팔 끓인다.
2.물이 끓으면 불을 끄고 당면 두 줌을 넣은 뒤 뚜껑을 덮고 10분 정도 불린다. (먹을 만큼만 만들 때는 따로 찬물에 식히지 않는다.)
3.냉장고에 있는 채소 중 뭐든 꺼내어 썬다. 오늘은 파프리카와 마늘종 당첨.
4.당면을 불린 지 5분 정도 되었을 때 달군 팬에 현미유를 붓고 썰어둔 채소를 넣고 간장을 한 숟가락 넣어 볶는다. 매콤한 걸 좋아한다면 이때 쫑쫑 썬 청양 고추 추가.
5.4의 팬에 불린 당면을 옮겨 담고 간장을 약간만더 첨가하여 마지막으로 볶아준다.
6.잡채를 그릇에 담고 후춧가루를 찹찹, 참깨를 솔솔 뿌려서 눈물을 닦고 맛본다.
7.이제 웃는다.
P.24
 
 
 
기어이 생색내고 싶은 날에는감자 옹심이
  감자 옹심이 레시피를 검색해 가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마침내 감자 옹심이 만들기에 돌입했다. 우선 감자를 갈아서 물을 잘 빼주어야 한다. 강판에 갈면 옹심이의 식감이 훨씬 좋다는데 일단 강판이 없고, 이만큼 정성을 들이는 마당에 강판에 갈 정성 정도는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믹서에 감자를 다섯 개 정도 넣고 갈았다. 채반에 잘 삶아 두었떤 면보를 깔고 면보 위에 간 감자를 올렸다. 간 감자의 물기가 어느 정도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대략 1시간 정도? 
  이제 본격적인 옹심이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간 감자를 면보로 감싸서 물기를 꼭 짰다. 레시피를 찾아본 바로는 감자에 남아있는 물기를 제대로 짜주지 않으면 끓이는 동안 옹심이가 다 풀어져 형태가 뭉그러진다고 했다. 그것에 대비해서 어떤 레시피에서는 물기를 어느 정도 짠 후에 따로 감자 전분을 간 감자에 섞어서 옹심이를 빚기도 한단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낸 후 애호박, 당근, 양파를 넣고, 감자의 풍미를 더 살리고 싶어 감자도 썰어 넣었다. 그러고는 대망의 옹심이 투척! 소금이랑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그릇에 담아 구운 김을 가루 내어 뿌렸다. 참깨도 솔솔.
  알타리무 김치와 엄마의 묵은지까지 조금 꺼내어 담고 주나 씨를 식탁에 앉혔다.
P.33
 
 
 
관계가 버거운 날커피 그늘
  언니가 처음으로 커피를 만들어 준 날을 기억한다. 언니는 우선 핸드밀로 원두를 천천히 갈았다. 벌써부터 커피향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익살맞게 생긴 아저씨가 그려진 모카 포트를 꺼내어 분리하더니 동그란 틀에 얌전히 커피 가루를 담고, 기구 아랫부분에 물을 담아 다시 조립해서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끓이기 시작했다. 한눈을 팔면 안 된다고 했다. 언제 끓어오를지 모르는데, 그걸 놓치면 안 된다고. 곁에서 나도 숨을 죽인 채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가스레인지 위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있던 그 기구를 노려보았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넘어갈 듯 거친 휘파란 소리 같은 것이 몰아치더니 진한 에스프레소가 추출되었다. 뜨거운 물로 데워둔 커피 잔에 커피를 나누어 담고 나서는 스테인레스 저그에 우유를 담아 데우기 시작했다. 중간 불에서 천천히 우유를 데우다가 김이 올라올 듯 말 듯한 순간, 불을 끄고는 저그에 우유 거품기를 끼우고 가녀린 팔로 열심히 펌핑하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열심히 해줘야 맛있는 거품이 만들어져." 
 언니는 몹시 중대한 일을 맡은 얼굴이었고, 정말 진지하게 거품을 완성했다. 곱고 풍성한 거품이 만들어지자 언니는 조심스럽게 커피 위에 우유 거품을 올렸고 마지막으로 시나몬 가루를 솔솔 뿌렸다.
 나는 그날의 커피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깊고 짙은 커피의 향기와 고소한 우유 냄새가 부드럽게 섞여 들어왔다. 커피 잔에 입술을 가져가자 공기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우유 거품이 먼저 닿았고, 계피 향을 슬쩍 지나 풍부한 커피의 향이 코와 목 안 가득 퍼져 나갔다. 쌉쌀하지만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고, 부드러우면서도 커피의 강한 맛은 그대로였다. 무엇보다도 신기했던 건 설탕을 넣지 않았는데도 달콤한 뒷맛이 남는다는 거였다. 이 단맛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커피를 다 마시고도 동글동글 남아있는 거품을 티스푼으로 떠먹으면서 알았다. 정성껏 거품을 낸 우유에서는 은은한 단맛이 난다는 것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짧은 시간에는 참으로 긴 시간이 담겨있었다. 이 모든 것을 끝내고도 하고픈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던 시간이.
P.42-43
 
 
<나만의 커피를 찾아서, 드립 커피>
1.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좋아하는 커피 원두가 담긴 봉투를 열어 향을 먼저 맡은 후 원두를 핸드밀에 천천히 간다.
2. 드리퍼에 여과지를 올리고 갈아 둔 커피 가루를 평평하게 담고 있으면 마음은 향기에 이미 무장 해제.
3. 예열해 둔 서버에 드리퍼를 올리고 커피 가루를 살짝 적신다는 느낌으로만 물을 조심해서 붓는다.
4. 30초 정도 뜸을 들이는 동안 커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영화 <카모메 식당> 에서 '코피 루왁!' 이라고 외쳤던 것처럼 커피가 맛있어지는 주문을 외워도 좋다.
5. 30초 정도 지나고 커피의 향이 가득 퍼지면 가는 물줄기를 유지하면서 원을 그려가며 물을 붓는다.
6. 약간 모자란 듯하게 커피를 내린 후 물을 조금 섞어주면 조금 더 상큼한 커피 맛을 볼수 있다.
7. 베란다로 고개를 돌려 나무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지면 오늘의 커피는 완성
P.47
 
 
 
거리를 두어야 한다면 홍차처럼
  홍차와 커피는 말을 거는 방식이 달랐다. 온몸으로 퍼지는 에너지가 나를 일으켜 세워 세상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가게 하는 것이 커피라면 홍차는 안으로 젖어 드는 고요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홍차 한 모금은 내 속에 있는 수많은 '나'들을 서서히 적시고 스며들어 와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나 자신과 오롯이 마주하게 했다. 은은하게 밀려드는 홍차 향에 이어 쌉쌀하고도 떫은 맛이 입 안을 지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첫모금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으니까.
  홍차를 마실 때 가장 즐기는 티 푸드는 바로 한과이다. 하얗고 통통한 찹쌀 유과를 베어 물면 알알이 떨어지는 튀밥과 조청의 달콤함이 다가오고, 튀긴 찹쌀의 섬세한 질감이 혀에 닿으면 바스스 부서지며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따뜻한 홍차로 데워진 입 안에서 스르르 사라지는 유과의 덧없는 맛은 홍차의 그다음 모금을 부른다. 그다음, 또 그다음.
P.49-50
 
 "미안하지만, 난 이제 너보다 이 녀석들이 더 중요해." 뿌듯한 애정이 넘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데 왜 나는 당혹스러웠을까. 나보다 더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기면, 그래서 엄마가 엄마의 생활에 집중하면 무척 홀가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섭섭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나는 웃으면서도 찔끔 눈물이 났다.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엄마의 나긋나긋한 한마디는 도리어 오랜 시간 채워지지 않았던 엄마의 외로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의 사랑을 맘껏 쏟고, 그 사랑을 온통 기쁘게만 받으며 행복해할 누군가가 필요했구나. 엄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외로웠구나.
  어느덧 강아지 두 마리가 엄마만의 고슴도치가 되었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부드러운 고슴도치. 강아지들한테 질투가 다 난다고 소리치는 내게 '이제 어쩔 수 없다'며 깔깔대는 엄마의 웃음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게 들렸다.
P.55-56
 
 
<다시 시작하는 새해 첫날의 매생이 굴 떡국>
1. 냄비를 달군 뒤 멸치를 2,3분 가량 볶은 후 구수한 내음이 나면 물을 붓고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끓인다.
2. 적당량의 매생이를 물에 담아 흔들어 가며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헹구어 물기를 짠다.
3. 굴도 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가며 씻어서 건져둔다.
4. 육수가 끓으면 떡국 떡을 넣고 끓이다가 굴과 적당히 잘라둔 매생이도 넣어 끓인다.
5. 여기에 마늘을 넣고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을 한다. 마지막에 대파를 넣고 마무리.
6. 뜨거운 매생이에 데지 않도록 후후 불어가며 먹으면 무엇이든 새롭게 할 힘이 솟아나는 새해가 시작된다.
P.69


 
기나긴 겨울밤을 베어 먹기무전, 배추천, 당근전
  사실 예전에는 당근 맛을 몰랐다. 사탕처럼 마냥 달지도 않고, 시금치처럼 양념에 금세 부들부들해지는 맛도 아닌 당근. 날로 먹으면 로션 맛 같기도 하고, 익히면 밍밍하고. 그래서 당근은 카레에 넣어서 진한 향신료에 맛을 감추거나 다양한 속재료를 가득 넣은 김밥에 꼽사리 끼워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날도 사다놓은 당근을 소진할 비책을 찾다가 당근전 레시피를 만났다. 당근으로 전이라니, 군침 도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냉장고에서 메말라 가던 당근 두 개를 꺼내어 믹서에 갈았다. 거기에 밀가루를 넣어가며 농도를 맞춘 뒤 동그랑 땡처럼 먹기 좋은 크기로 부치면 되는, 역시나 간단한 요리법.
  당근전을 굽는 동안 투명했던 식용유는 맑은 귤색으로 물들어 가고 당근전은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달콤한 냄새에 빛깔은 또 알마나 곱던지. 그렇다면 맛은? 당근전을 처음 맛보았던 순간의 내 심정은 어쩌면 기원전 3시기를 살던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유레크! 당근전에서는 당근 케이크 맛이 난다!
  “세상 사람들, 이거 알아요? 당근의 단맛과 밀가루와 기름이 만나면 당근케이크 맛이 난다고요!”
  당근전을 먹고 나서부터 당근을 좋아하게 되었다. 당근전이 당근의 진정한 맛을 가르쳐 준 것이단 아삭 아삭 씹으면 이 사이로 스며드는 수분감, 이어서 혀를 감싸는 당근만의 달큰함은 요랑스러운 사탕보다도 상쾌했다. 음식 준비하느라 당근을 썰 때면 나도 모르게 당근을 자꾸 주워 먹고, 옆에서 식탁을 차리고 있는 주나 씨의 입에도 굳이 넣어주는 것이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2월 재래시장에 나가면 제주도에서 날아온 겨울 노지 당근이 귀여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해가 짧아진 겨울에 여름빛을 닮은 당근을 먹으면 햇살의 밝은 기운을 듬뿍 쪼인 기분이 된다.
  기나긴 겨울밤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면, 갖가지 전을 추천한다.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밥에도 술에도 잘 어울리며, 누구라도 좋아하는 전. 전을 한 점씩 먹을 때마다 겨울밤은 짤ㅈ아지고 동장군이 한 발씩 뒤로 물러난다. 그러면 어느새 기다리던 봄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P.88-90

 
 
어쩌다 비건에 가까이 나만의 샌드위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혼밥 메뉴는 오이 달걀 샌드위치. 막 찐 달걀에 마요네즈, 버터, 후춧가루, 허브 가루, 씨겨자 소스, 아무튼 맛있는 건 몽땅 넣어 함께 으깬다. 달걀을 찌는 동안에 오이를 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꼭 짜서 달걀 샐러드에 섞어주면 된다. 샌드위치 맛은 또 빵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거친 호밀빵을 특히 좋아하는데, 호밀빵을 썰어서 노릇노릇하게 구워 습기가 차지 않게 세워 열기를 식히면 빵의 바삭함이 살아난다. 잘 구운 빵이 아작아작 오이가 더해진 달걀 샐러드와 만나면! 이보다 완벽한 샌드위치가 있을까. 여기에 그뤼에르 치즈까지 올려주면 금상첨화.
  몇백 년 전 영국 귀족들이 온실 재배된 비싼 오이를 구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며 먹었을 오이 달걀 샌드위치를 나는 이렇게 편안하고 우아하게 즐긴다. 귀족도 안 부러운 맛.
p.111-112
 
  삶은 찰나의 행복과 원인 따위를 알 수 없는 선명한 불행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추상화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시작과 끝을 선택할 수도, 기쁨과 슬픔의 농도를 조절할 수도 없는, 주어진 것을 묵묵히 그려나가야만 하는 나만의 작품. 얼룰덜룩한 백반증도 나의 캔버스에 선명히 새겨져 있음을 이제는 안다. 그 무늬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무늬라는 것도.
  내 작품은 여전히 진행형이니 언제 어느 때든 또다시 힘든 시간이 찾앙겠지. 그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먼저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다 비워야지. 
p.112-113
 
 
 
<혼자 먹어서 더 맛있는 오이 달걀 샌드위치>
1. 달걀 3개를 찜기에서 13분 가량 찐다.
2. 오이를 적당한 두께로 송송 썰어 소금을 뿌리고 10분 정도 절인 후 물기를 꼭 짠다.
3. 막 쪄낸 달걀은 찬물에 헹궈 껍데기를 벗긴 후 마요네즈, 후춧가루, 씨겨자 소스, 허브 가루를 넣는다. 버터를 좋아한다면 버터도 약간 넣어 으낀다.
4. 달걀 버무릴 때 치즈를 넣어도 좋고, 나중에 슬라이스 치즈를 올려도 괜찮다.
5. 맛있게 버무린 달걀에 절여둔 오이를 섞어준다.
6. 호밀빵 4조각을 기름 없이 달군 팬에 앞뒤로 구운 뒤 열기를 식혀준다.
7. 바삭한 호밀빵에 달걀 버무린 것을 올리고 고운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준다. 깔끔한 맛 상승 효과 (고춧가루 대신 파프리카 파우더를 넣으면더 맛있다)
8. 완성된 샌드위치를 아작아작 먹으면 혼자라서 행복한 혼밥이 보장된다.
P.114
 
 
 
뚜껑을 활짝 열고 싶은 날│ 도시락의 비밀
   문제는 점심시간이었다. 친구들과 책상을 붙이고 둘러앉아 도시락을 열 때마다 나는 늘 조금 떨렸다. 아빠가 도시락을 싸준 날이면 반찬들이 한쪽으로 몰려서 온통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달걀말이가 김치 국물에 젖어서 고춧가루가 어지러이 박힌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의 단정한 도시락 앞에서 나는 도시락을 조심스레 열어놓고 김치 국물 맛이 나는 달걀말이를 열심히 먹었다. 그것이 가장 맛있는 반찬이라도 되는양 뺏길 수 없다는 듯이. 다행히 나는 먹는 속도가 빨라 내 도시락 반찬은 다른 친구들 것보다 손쉽게 사라질 수 있었다.
  처음엔 아빠가 미웠다. 엄마가 싸줄 때는 얌전하기만 한 반찬들이 왜 아빠가 싸주기만 하면 난리가 나는 걸까. 왜 아빠는 엄마처럼 싸주지 못할까. 꼼꼼히 싸주지 못하는 아빠를 원망하다 보면 결국은 엄마 때문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론에 도달했다.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일찍 일어나지 못할까. 도시락 싸는 일이 왜 그리 힘들까. 우리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과는 다른 걸까. 왜 자꾸 아플까.
p.118-119
 
   그렇게나 먹는 걸 좋아하지만 막상 (내가) 도시락을 싸는 일은 무척 귀찮은 일이었다. 김밥을 사 먹을까(사 먹는 건 너무 짜거나 달아), 떡이 나을까(먹다가 목 막혀). 이런 저런 생각 끝에는 누가 좀 대신 싸줬으면 싶어지고, 그러다 마침내는 엄마가 떠오르고 말았다.
  나는 이제야 그때 힘겹게 도시락을 싸주었던 엄마 마음을 헤아려 본다. 아빠가 싸준 뒤죽박죽 도시락을 자주 먹고, 엄마의 단정한 도시락은 가끔 먹을수 있었던 내 어린 날들이 엄마, 아빠의 최선이었다고.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엄마 생신날. 통 기운이 없던 엄마가 무척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더니, 아빠가 끓여준 미역국이 그렇게도 맛이 좋았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예전엔 그 쉬운 미역국도 못 끓이던 아빠가 이제는 누구보다도 맛난 미역국을 끓인다고. 그사이 아빠의 요리 솜씨가 부쩍 늘었다고 말이다. 엄마 목소리 뒤로 아빠의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가만히 들려왔을 때 달걀말이를 도시락에 담아주던 아빠의 웃음이 떠올랐다.
  다시 그 시절 점심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도시락 뚜껑을 활짝 열고 아빠가 싸준 도시락이라며 친구들에게 자랑할 텐데. 그리고 오렌지색으로 물든 아빠의 달걀말이를  밥 위에 올려 두 볼이 터지도록 흐뭇하게 먹을텐데 말이다.
p.120-121
 
 
대식하는 미식가를 위한 메뉴│ 온전한 비빔밥
  <한 그릇 든든한 비빔밥>
1. 애호박, 양파, 버섯, 마늘 등 좋아하는 채소를 먹기 좋게 썰어 팬에 올리고 기름 없이 약한 불에서 굽는다.
2. 채소즙이 나오고 고소한 냄새가 나면 뒤집어서 더 굽다가 노릇노릇해지면 꺼낸다.
3. 달걀 프라이는 달군 팬에 식용유를 붓고 바삭하게 반숙으로 굽는다.
4. 준비한 채소에 열무김치나 부추김치, 오이 무침이나 무생채를 추가하면 맛 보장!
5. 먹을 만큼 밥을 덜고 달걀 프라이까지 올린 후 모든 재료가 고추장과 하나 되게 비벼주면 영혼까지 든든해지는 비빔밥 완성.
p.139
 
 
비운 뒤에 채우고 싶은 시간│ 찐 감자와 꽈리고추찜

  느긋하게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식사를 하는 것 같아 좋은 휴일 아침!

 
  휴일에는 평일과 다르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빵과 떡, 거기에 샐러드와 과일, 견과류를 차리고 커피나 홍차를 곁들여 천천히 아침 식사를 즐긴다. 치아바타나 바게트, 커다란 캄파뉴를 잘라서 따뜻하게 구워 치즈나 버터를 올려 먹으면 마치 유럽 명화에 나오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식탁의 주인이라도 된 것 같다. 이런 근사한 착각 때문에 나는 평일보다 휴일에 더 일찍 일어나곤 한다.   그런 나답지 않게 늦잠을 잔 아침이 있었다.  일어나 보니 오전 9시가 넘었다. 귀한 휴일 아침을 잠으로 날린 것 같아서 속상했지만 서둘러 밥을 먹었다. 그래야 남은 시간이라도 좋아하는 일들로 빼곡히 채울 수 있을 테니까. 그날은 꽈리고추찜을 만드는 일도 중요한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p.140-141
 
 
완벽한 하루│ 시판 냉면도 더 맛있게
   시판 냉면도 흡족하게 먹으려면 적절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우선 찜기를 불에 올려 달걀을 찐다. 나는 달걀을 삶기보다 쪄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 달걀이 더 탱글탱글하니까. 찬물에서부터 달걀을 찜기에 올리고 물이 팔팔 끓으면 약한 불로 줄여 대략 13분 정도 후에 꺼내면 완숙이 되기 직전의 반숙, 말랑하고 촉촉한 오렌지빛 노른자를 맛 볼 수 있다. 
  그다음엔 냉면 위에 올릴 채소를 준비한다. 가장 좋아하는 건 오이와 방울토마토. 오이는 반달 모양으로 얇게 썬 뒤 소금에 절여 꼭 짜서 아작아작한 맛을 즐겨도 좋고, 가늘고 길게 채 썰어 그대로 올려 먹어도 맛있다. 오이의 시원한 향과 냉면 육수의 조화는 언제나 잘 어울리니까. 그리고 토마토가 있으면 더 좋다. 토마토의 붉은 빛이 오이와도 잘 어울리는 데다가 은은한 단맛이 냉면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나 말이다. 토마토를 준비한 날엔 토마토 샐러드까지 곁들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소금, 후춧가루, 올리브 오일, 레몬즙으로 버무려 먹어도 좋고, 발사믹 식초를 뿌려도 좋고. 
p.156-157
 
  잘게 채 썬 애호박, 당근, 양파가 서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밀가루 반죽을 묻혀 달군 팬에 지글지글 부치면, 냄새부터 3배로 달콤한 애호박전이 완성된다. 애호박, 당근, 양파는 익히면 저마다 다른 향의 단맛이 살아나서 냄새부터 맛있다. 애호박전을 살짝 찍어 먹을 초간장을 담고, 냉면 먹을 때 없으면 서운한 열무김치를 덜어놓고, 면을 그릇에 담고 육수를 적당히 부어준 뒤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올리면, 끝! 마음껏 먹는 일만 남는 것!
 
  커다란 문제들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자신이 없지만,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만큼은 이렇게 내 방식을 시도해 본다. 어쩌면 이런 작은 시도가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살아온 내가 한 끼를 먹더라도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하고 싶은 방식으로 만들고, 드디어 완성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산다. 
 
  냉면 육수 한 모금에 찐 달걀 한 입을 먹으면 목도 안 메고 술술 잘도 넘어간다. 달달한 애호박전을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단짠이 절로 완성되는 맛. 호로록 호로록 냉면은 젓가락질 대여섯 번만에 사라지고 토마토 샐러드로 상큼하게 입가심까지 하고 나면, 햇볕 쨍쨍한 초여름의 산책을 나서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 된다.
p.158-159
 
 
사심 가득한 방문│ 소목의 책과 음식
   어떤 만남에든 적극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면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관계에 이름을 붙여주고서, 그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내 삶의 모든 틈들을 사람들로 채우고 싶었던지, 그렇게 나는 끈끈하고 길디긴 인연에 집착했다. 
  한참 나중에야 무수히 많은 관계들 하나하나가 생명체처럼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지닌다는 걸 알았다. 소나무처럼 오랜 세월을 꿋꿋하게 가는 관계도 있지만, 어떤 관계는 깊은 한 시절을 보낸 뒤 자연스럽게 끝나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p.168-169
 
  <영혼을 홀랑 빼앗는 묵은지 닭볶음탕 소목 레시피>
1. 껍질을 벗긴 볶음탕용 닭 한 마리를 잘 씻은 후 끓는 물에 생강술(생각으로도 대체) 두어 숟가락과 함께 넣고 10분 정도 끓인다.
2. 고춧가루와 간장은 넉넉히, 고추장과 설탕은 적당히, 다진 마늘, 맛술까지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 감자, 당근, 호박, 양파, 대파는 큼직하게 썰어둔다.
4. 잘 익은 김치 1/4포기를 통으로 넣고, 양념장과 함께 감자와 당근을 먼저 넣은 뒤 20분 더 끓인다.
5. 썰어준 호박과 양파를 넣고 5분 더 끓인다. 이때 간을 보며 부족한 양념 추가
6. 마지막으로 어슷썰기해 둔 대파를 넣고 숨이 죽음녀 먹는 타이밍!
7. 물을 조금 넉넉하게 넗고 끓여서 라면이나 납작당면 사리를 넣어 먹음녀 더 맛있다. 이때 술이 생각날 수 있으니 미리 술을 준비해 둔다.
p.175
 
 
우리 집에 달인이 살아요│ 야심찬 사과
  사과를 깎아 먹기보다는 껍질째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사과 껍질에 들어있다는, 비만을 예방하고 근육 형성에 도움을 주는 우르솔산이 뱃살을 근육으로 만들어 줄까 싶어서? 항산화 성분이라는 폴리페놀과 트리터페노이드가 무병장수의 꿈에 한 발 다가가게 해줄까 봐? 혹은 노화를 방지해 준다는 안토시아닌 덕에 스무 살때부터 이미 주름 가득했던 내 노안이 갑자기 동안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건 아니다.
 
  <달인의 훈련법, 토르티야 사과 피자>
1. 토르티야 위에 꿀을 얇게 펴 바른 후 모차렐라 치즈를 골고루 뿌리고, 중간 중간 고르곤졸라 치즈도 적당히 올린다.
2. 반달 모양으로 최대한 얇게 썬 사과를 둥글게 올리고, 그 위에 사과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한 겹 더 올린다.
3. 잣이나 잘게 부순 호두, 아몬드 등 집에 있는 견과류를 약간 뿌린다.
4. 오븐에 굽거나, 기름 없이 달군 팬을 약불에 넣고 뚜껑을 덮어서 치즈가 녹을 때까지 구워준다.
5. 구워진 토르티야 피자에 시나몬 가루를 솔솔 뿌린다.
6. 짭짤한 치즈와 달콤한 꿀의 단짠 조화, 아삭한 사과와 달콤한 시나몬의 포근한 조화를 음미한다.
p.204
 
 
나의 자매들과 함께하는│ 링가링가한 삶의 맛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가 함께 좋아해 주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있을까. 
p.216
 
  답이 보이지 않는 푸념을 늘어놓거나 힘들어 죽겠다고 엄살을 부릴 때에도 나를 다독이는 랜선 언니들의 따뜻한 댓글 덕분에, 솔직한 것 말고는 별 볼 일 없는 내 글이 비로소 작은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그 다독임에 그다음 글을 쓸 수 있었다.
p.217
 
  책에 진심인 자매들과 책을 읽다 깨닫게 된 사실. 책에는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고 결국은 읽어야 할 책이 거미줄처럼 무한히 얽히는 성질이 있음을 알았다. 알고 보니 SNS는 아름다운 사진과 이야기들로 단단히 엮인 책 거미줄이었다. 눈에 잘 띄지 않던 거미줄에 햇살이 내리면 얼마나 반짝이던가. 그 고운 거미줄에 매달려 도통 빠져나갈 수 없게 된 나는 어느덧 랜선 자매들과 함께하는 북 클럽에 참여하고 있었다.
p.219
 
  <자매들과 '링가링가'한 모임 레시피>
1. 자매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약속한다.
2. '내가 가장 아끼거나 공감하는 인물' 이 등장하는 책을 한 권씩 고른다.
3. 긴긴 대화가 이어질 것이므로 편안하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옷차림을 하는 것이 좋은 선택.
4. 나처럼 카페인에 취약한 자매는 사흘 전부터 카페인을 자제하며 숙면을 취해 '수다 떨기 좋은 몸'을 만들고, 식사를 든든히 한다.
5. 자매들이 모여 자신이 선택한 책, 내가 아끼는 책 속 인물을 소개하다 보면 대화는 나의 이야기, 우리 이야기로 둥글게 이어진다.
6. 달콤한 케이크와 빵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7. 헤어지는 아쉬움은 링가링가한 랜선 후기를 이어가며 달랜다.
p.225
 
 
 
1판 1쇄 인쇄 
  2022년 11월 25일
1판 2쇄 발행 
  2023년 3월 11일